정말 훌룡한 책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읽는 사람 입장에서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으로
접근했다면 정말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전형적인 동양인의 시각으로 접근한 것 같다.
이 책에서 나는 두가지를 얻었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1. 희구(希求) - 바랄 희, 구할 구
희구는 욕구, 욕망 2가지로 구성된다.
욕구는 내 능력이 되는 것까지 바라는 것이고
욕망을 내 능력을 넘어선 것을 바라는 것이다.
욕구의 예를 든다면 회사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여 높은 성과를 거뒀다면 연봉의 인상이나
보너스 를 기대한다 이것이 욕구이다. 욕구는 건전한 것이며 사람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욕망의 대표적인 예는 공무원의 부정부패이다. 공무원 월급으로는 고급 주택이나 많은 재산을
보유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뇌물을 받거나 자신의 횡령을 저지른다.
욕망을 실현한 사람은 영화의 주인공이나 뉴스에 대서 특필 된다.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욕망은 월세집을 원해서 갖게 되면
더 힘든 전세집을 원하게 되고 그 다음은 내 집, 그 다음은 강남의 고급주택, 그 다음은 여러채
등으로 끝 없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해 버려 사람의 능력으로는 그것을 충족시킬 수가 없다.
대기업 CEO들은 충분한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그들도 늘 부족하다. 재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욕망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조절할 방법은 없는가?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이 있다.
2. 자극과 반응
사람은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고 눈, 코, 입, 귀, 몸, 마음으로 이 자극을 받아 들이고 판단하여
반응을 한다. 이것을 받아 들일 때 집중하여 그것이 불건전한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면 거부하고
건전한 욕구를 자극하면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차림"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이것의 설명이 참 마음에 안든다. 서양 철학 서적에서도 이러한 설명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이 공간에 자극이 머무르는 동안 사람은 그것을
돌려보낼 수도, 받아 들일 수도. 없애 버릴 수도 있다. 이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은 이미
자기 개인의 반응의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 패러다임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꾼다면
능숙하게 해 낼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같은 말일지라고 후자의 설명이 내 피부에 더 와 닫는다.
내가 싫어 하는 자극이 오면 나는 불같이 화낼 것이고 음식을 보면 군침을 흘릴 것이다.
돈을 보면 욕심이 날 것이고 이러한 패러다임은 교육받지 않은 인간도 생존을 위하여
먹고 자고 배설하는 그리고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패러다임으로
형성될 것이고 학교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것이 패러다임으로 형성될 것이다.
이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성자가 되는 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바꿀 수 있고 이것은 자신의 삶을 더욱 윤택하고 행복하게 한다는 데는 찬성한다.
이 책에서 "알아차림"의 방법으로 권하는 명상은 아직은 나 한테 무리인 것 같다.